[특파원 현장보고] 저격수·폭동이 웬말…너무나 평온한 뉴욕 투표 현장 < 국제뉴스 < 기사본문

(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가 치러진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은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투표일 시민들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맨해튼 미드타운을 찾기 전 머릿속에 떠올렸던 그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거리였고 다른 하나는 4년 전 대선 당일 맨해튼의 거리였다.

워싱턴DC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선 당일 거리는 '살풍경'이다.

외신을 보면 이번 선거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DC의 많은 노점 가게가 유리창을 보호하기 위해 가림막(board)을 덧대고 있다. 4년 전 대선 때와 마찬가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선거 패배에 불복하며 무력을 동원하자 폭동과 소요 사태를 대비해 DC의 소상공인들은 가림막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소요 사태에 대비해 가림막을 쳐놓은 워싱턴DC의 스타벅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DC는 더 심각하다. 트럼프가 올해도 '선거 사기'를 언급하며 패배 시 불복할 가능성을 내비치자 시민들은 가림막을 설치했고 DC 당국은 삼엄한 경비마저 배치했다.

백악관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거주하는 관저 주변에는 최대 반경으로 철책이 설치됐고 주요 지역에는 저격수마저 배치됐다. 곳곳에서 검문도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24곳 이상의 주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DC에 주 방위군을 파견하겠다는 의향까지 밝혔다. 소요가 발생하면 경우에 따라 '내전'에 준하는 사태로 보고 군사 동원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4년 전 대선 때는 사태 격화를 우려해 일부 주는 주 방위군 파견을 거부한 바 있다. 미국 내부에서 보는 시각은 4년 전보다 더 암울하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상태에서 이날 미드타운을 찾았다.

맨해튼 또한 4년 전 대선 당일 거리 곳곳이 가림막으로 가려졌던 기억이 있다. 주요 거점 지역에선 차량을 불시 검문하는 경찰과 탐지견의 모습이 뉴스를 도배했던 만큼 이날도 긴장감을 가진 채 미드타운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 당일의 맨해튼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거리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주부터 매일 맨해튼을 찾았지만 4시간 동안 돌아다닌 이날도 전날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4년 전과 달리 적어도 미드타운(10~60번가 사이)에는 가림막을 설치한 가게를 한 곳도 발견할 수 없었다. '보안(SECURITY)' 글자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무장 경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이 평소보다 더 보이긴 했지만 교통 체증을 대비한 듯 긴장된 느낌은 받기 어려웠다.

평온한 맨해튼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 일대
[직접 촬영]

투표소들을 둘러봐도 긴장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맨해튼 링컨센터에 설치된 투표소를 포함해 이날 총 4곳의 투표소를 찾았는데 경찰관들의 얼굴에는 심각함보다는 나른함이 서려 있었다. 애리조나주나 조지아주 같은 경합주에선 투표소 주변을 철망으로 두르고 긴장감이 팽배한 반면 뉴욕 경찰들은 심드렁하게 투표를 안내하는 모습이었다.

뉴욕주립대 연관 건물에 설치된 투표소
[직접 촬영]

투표장 또한 한산했다. 10시 이전에는 몇 명이 줄을 서 있기도 했지만,특파원현장보고저격수폭동이웬말너무나평온한뉴욕투표현장국제뉴스기사본문 그것마저 한 시간도 안 돼 줄이 대부분 사라졌고 투표자들은 막힘없이 투표하고 볼일을 보러 갔다.

기본적으로는 이미 상당수 유권자가 사전 투표를 마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의 유권자는 2억4천400만명으로 추정된다. 올해 투표율이 66.6%였던 2020년 수준을 기록할 경우 1억6천200만명이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이날 오전 8시 기준 약 8천300만명이 우편투표와 투표소 투표 등의 방식으로 사전 투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대선 투표 당일 투표장을 찾는 사람은 줄어든다는 의미다. 특히 미국은 선거일이 연방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바쁜 직장인들은 사전투표하는 식으로 시간 배분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대부분의 투표 장소가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만 투표일에 쉬는 구조다.

맨해튼 예술디자인고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소
[직접 촬영]

링컨센터 투표소 앞은 사람들의 줄이 없어지면서 투표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한 방송국 직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투표소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붙잡으며 투표는 했는지, 누구에게 왜 했는지 등을 연신 질문했다.

링컨센터 투표소 앞에서 인터뷰하는 현지 방송국
[직접 촬영]

DC나 주요 경합주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뉴욕이 이처럼 느긋한 것은 경합주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대선이 초박빙 판세인 만큼 경합주 결과에 대선 결과가 얼마든지 좌우된다. 이 때문에 경합주에선 투표 결과에 흥분한 지지자들이 소요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당국으로선 경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뉴욕은 미국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29명이 걸려 있다. 핵심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의 29명과 같은 규모다. 하지만 워낙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굳이 눈에 심지를 켜고 들여다볼 이유도, 소요를 일으킬 명분도 약하다는 관측이다. 4년 전 대선 때도 워싱턴 DC는 아수라장이 됐지만 뉴욕시에선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 요소일 것이다.

이날 맨해튼 48번가에 위치한 중식당에서 만난 미국계 중국인 직원 마이크 첸은 올해 왜 가림막이 보이지 않냐는 질문에 "뉴욕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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