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윤교 기자 = 미국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국제 유가의 향방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분석된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내걸고 있는 에너지 공약은 선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주요 외신 분석에 따르면 국제 유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시 하향 안정화를,美대 반면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 시 상향 흐름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드릴, 베이비, 드릴"…유가 하향 안정화 전망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추 독려를 의미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를 반복해왔다.
석유업계를 든든한 뒷배로 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목표 중 하나는 미국을 전 세계의 주요 에너지 공급자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 내 석유와 천연가스·원자력 등 전통 에너지의 생산을 늘리고, 이를 위해 더 많은 토지와 수역에서 시추를 허가하겠다는 게 그의 공약이다.
올해 석유업계가 트럼프 전 대통령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에 후원한 금액은 약 1천400만 달러로, 전체 산업군 중 4위에 달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통 에너지에 중점을 두는 한편, 조 바이든 행정부의 탄소배출량 감축 정책 등 환경 규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미국 내 원유 공급이 늘어나면서 중장기적으로 국제 유가는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안다의 켈빈 웡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을 주요 석유 공급 국가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며 "이러한 움직임이 유가를 하락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이 백악관으로 돌아간다면 각종 에너지 비용이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지난 선거 유세 과정에서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쳤을 때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1.87달러에 불과했다"며 갤런당 1.87달러라는 목표 가격을 19번이나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인 3.15달러 대비 40%나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 "트럼프 에너지 공약 현실화 어려워"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에너지 가격도 급격히 낮아지고 석유업계의 호황도 맞이하는 시나리오는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마크 핀리 라이스대학 연구원의 계산에 따르면 휘발윳값이 갤런당 1.87달러로 떨어지려면 먼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로 급락해야 한다.
근월물인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아시아 시장에서 배럴당 68달러 선에 거래됐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부근으로 급락했던 유일한 시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이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석유 전쟁'을 벌이며 유가 하락을 부추겼던 때다.
에너지 경제학자들은 대통령이 유가를 낮출 수 있는 권한에도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 유가의 향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와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로 이뤄진 OPEC플러스(OPEC+)의 정책에 사실상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제유가의 하락세가 지속될수록 트럼프 전 대통령의 뒷배인 석유업계의 사정도 어려워진다.
에드 허스 휴스턴대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원윳값이 배럴당 45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석유기업들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어진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지면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주요 투자에서 아예 손을 뗄 가능성이 커진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시추에 대한 지출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고 정유소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텍사스대학의 벤 케이힐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이 바닥을 치기를 원하고 석유 생산의 호황도 원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고조되며 국제 원유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엑스에스닷컴(XS.com)의 라니아 굴레 선임 시장 분석가는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로 국제에너지기구(IEA)와 OPEC이 올해와 내년 석유 수요를 하향 조정한 만큼 미·중 관계가 원유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그의 엄격한 무역 정책으로 석유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져 중국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 안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중동과 동유럽의 지정학적 갈등도 공급 차질에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중대한 도전 과제"라고 덧붙였다.
◇해리스 "프래킹 금지 않고 청정에너지 목표 달성"…국제유가 강보합
해리스 부통령이 내세우는 에너지 정책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르다.
해리스 부통령은 집권 시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반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셰일가스 추출용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을 집권 시 금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민주당에선 화석 연료 증산의 핵심 기술인 프래킹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해리스 부통령도 지난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는 환경에 미칠 악영향 등을 이유로 프래킹에 반대했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초접전 양상이 이어지면서 표심을 의식해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프래킹이 선거인단 19명이 걸린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주의 일자리 창출과 세수, 가계 수입원 등에서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리스 부통령이 집권하게 될 경우 국제 유가는 완만한 강보합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해리스 부통령 집권 시 국제 유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시나리오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높겠지만, 오히려 더 안정적인 가격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굴레 선임 시장 분석가는 "트럼프와 달리 해리스는 외교적 해결책을 선호한다"며 "트럼프는 지정학적 갈등이나 에너지 시장에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국제 유가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외교적 해결책을 선호한다는 면에서 트럼프와 포지션이 달라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한편, 국제 유가의 미래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복합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굴레 선임 시장 분석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서로 다른 에너지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요인은 OPEC+의 정책과 세계의 지정학적 갈등, 수요와 공급의 역학 관계, 금융위기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경제 성장과 에너지 수요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어 향후 몇 달 동안 유가 전망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yg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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